빵공장이 맺어준 소중한 인연과 함께한 단동여행(류미애 인천운영위원)
  글쓴이 : 빵공장     날짜 : 09-12-03 19:18     조회 : 6600    

 

빵공장이 맺어준 소중한 인연과 함께한 단동여행

 

류미애 인천빵사업본부 운영위원

 

단동에 다녀왔다. 북한과 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곳이라고 말만 들었는데 직접 가보니 정말 신의주가 너무 가까이에 있었다. 지난 7월 23일부터 27일까지 꿈만 같았던 4박5일의 단동여행, 북녘어린이영양빵공장사업본부 중앙과 인천본부 14인의 즐거웠던 여행을 되돌아보고자 한다. 

 

2005년 2월부터 기계설비와 제빵 재료가 북으로 전달되어 대동강어린이빵공장에서 하루 일 만개의 빵이 매일 생산되고 있다. 단동(丹東)은 북으로 가는 제빵 재료가 보내지는 곳이라 우리에겐 매우 의미 있는 곳이다. 올해 인천본부에 새로운 운영위원들이 들어오면서 새롭게 후원사업에 매진하기로 결의를 하며 현장을 방문해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남북관계의 경색으로 6월 평양 대동강빵공장 방문이 어려워지면서 단동여행 일정이 좀 빨라졌다.

 

여행은 새로운 에너지를 주는 것이라 기대와 설렘으로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항상 바쁜 일정으로 자주 보기 힘든 사람들과 4박5일을 함께 한다니……. 새로운 정을 쌓을 것 같아 더 좋았고, 특히 좀 어려운(ㅎㅎ) 본부장님과 함께 가게 되어서 기뻤다. 단동으로 직접 가는 비행기가 없어 우선 대련으로 갔다. 저녁9시50분에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대련에 도착하니 현지 시간으로 9시50분. 한 시간 정도의 시차가 있어 도착시간과 출발시간이 같다 보니 그제야 중국에 왔다는 걸 실감하했다. 한 시간을 공짜로 얻은 느낌이었다. 물론 한국에 돌아올 때 그 한 시간은 온전히 되돌려 주었지만. ^^

 

우리를 위해 먼저 대련에 가셔서 숙박시설도 살펴주시고 이것저것 챙겨주신 박대식 인천사업본부 운영위원장님이 대련공항에 마중 나와 주셨다. 어찌나 반갑든지! 덕분에 좋은 곳에서 여정을 풀고 김영구 인천사업본부 대표님의 생일파티로 우리의 술자리는 시작되었다. 여행의 첫날인데 이보다 더 즐거울 순 없었다. ^^

다음 날 아침, 일어나서 주변을 돌아보니 대련은 도시화가 많이 진전된 꽤 큰 도시였다. 지난밤 새벽2시에 북경에서 날아와 주신 김국래 선배님(기후가 좋지 않아 전날 오후4시 출발예정이었는데 겨우 새벽에야 도착하셨다. 덕분에 우리의 술자리가 새벽5시까지 계속되었다. ㅠ.ㅠ)의 유창한 중국어 실력으로 과일도 사고 물도 사고 점심 먹을 식당도 알아보면서 대련의 아침을 맞았다. 김국래 선배님 덕분에 쌀국수집을 발견해서 맛있는 점심을 먹고 단동으로 출발하였다.

 

버스로 4시간이나 되는 긴 거리인데 장충평 사장님(대동강어린이빵공장에 제빵재료를 보내주시는 협력업체인 단동우태 사장님)이 직접 마중을 나오셨다. 우리에 대한 깊은 배려가 느껴졌다. 여행 내내 우리를 즐겁게 해준 막말가이드(여행 중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붙여진 이름이다) 영미씨의 설명이 시작되면서, 중국대륙의 광활한 농토를 지나는 버스관광이 시작되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옥수수밭을 보면서 중국이 세계 옥수수 판매량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말이 실감나기도 하였다. 역시 중국은 큰 나라임이 느껴졌다.

 

휴게소에서 쉬는 중에 마침 차가 고장이 났다. 2시간 기다리는 동안 장충평 사장님이 사주신 아이스크림과 온갖 과일을 다 먹으면서 오랜만에 시간을 여유 있게 보냈다. 언제 우리가 이렇게 한가하게 보내봤는지. 단동에 도착하자마자 장충평 사장님이 마련해 주신 환영만찬을 가졌다. 압록강의 멋진 야경을 보며 푸짐한 정식중국요리를 제대로 맛볼 수 있었다.

25일 셋째날 일정은 6시30분 기상, 7시 봉황산으로 출발이었다. 전날 마신 술이 채 깨지도 않은 채 허둥지둥 봉황산으로 떠날 채비를 서둘렀다. 시간이 부족해 정상까지는 못간 것을 끝내 아쉬워하면서 봉화대까지만 올라갔다 내려왔다. 바위로 험난한 산이라 우리나라의 월출산을 떠올리게 했다. 재미있게 웃고 떠들면서, 땀 흘리고 등산하니 기분도 좋았다.

 

오는 길에 항미원조기념관에 둘렀다. 우리가 쉽게 보기 힘든 북과 중국의 역사적 사진들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곳에서는 우리의 또 다른 한쪽의 이야기가 있었다. 인민대중의 이해를 우선하는 북과 중국의 동맹관계를 새롭게 볼 수 있었다.

 

저녁은 한국식으로 김치찌개. 얼마나 맛있게 먹었든지. 단동은 곳곳에서 한국음식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어로 된 간판들도 많고. 남과 북의 문화가 중국의 문화와 교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대련에선 중국말을 할 줄 모르니 어디 다니기가 무서웠는데 단동에선 우선 안심이 되었다. 중국에서 남이든 북이든 우리나라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은 참 기쁜 일이었다.

 

26일 오전, 호산장성(虎山長城)에 올랐다. 산형세가 마치 호랑이가 누워있는 것 같아 붙여진 성의 이름이다. 원래는 고구려가 세운 천리장성의 요새 박작성이 정설인데 최근 중국의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만리장성처럼 다시 쌓고 만리장성의 길이를 연장한 학설을 발표했다. 어쨌거나 산성위에서 보면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한쪽은 중국의 영토 다른 쪽은 신의주이다. 산성 뒤쪽에 한발 건너면 북한 땅에 닿을 수 있다고 붙여진 일보과(一步跨)가 있다. 남북한 교류가 차단되었을 때 북의 고향을 그리워하는 남한의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을 것 같아 가슴이 찡했다.

 

 

일보과를 둘러본 후 서둘러 압록강에서 유람선을 탔다. 가까이에서 신의주를 보니 고향에 온 듯 너무 반가웠다. 건너에서 배를 타고 지나는 북의 사람들과 손을 흔들며 서로 반갑게 인사했다. 평양에 처음 가서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었던 그때의 설렘이 다시 살아오는 느낌. 진한 동포애가 느껴졌다. 3년 전 평양에 갔을 때는 이제 우리가 통일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꼈는데…… 다시금 대동강을 밟아보지 못하고 오작교에서 견우 직녀가 만나듯, 압록강에서 신의주에 사는 북의 동포들을 바라보기만 하는 지금의 처지에 분노가 치밀었다. 그렇게 아쉽게, 흘러가는 압록강을 바라보며 단동에서의 마지막 밤을 맞았고, 고려식당에서 북의 음식과 공연을 보며 그 아쉬운 마음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그 날 오후엔 북으로 보내는 제빵재료 구입과 수송을 담당하고 있는 단동우태복장진출구유한공사를 직접 방문했다. 우리 일행은 그날 그 자리에서 이미혜 본부장님과 장충평 사장님이 계약서에 서명하는 모습을 함께 지켜보았다. 어느 해인가 장마가 심해 북으로 보내야 할 밀가루가 모두 젖게 되자 사장님이 밀가루를 새로 구입하여 보내셨다는 얘기를 듣고는 북과 우리의 약속을 소중히 지켜주신 사장님께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물가가 자꾸 올라 하루 일 만개의 빵 생산을 지켜내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그 소중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전국적으로 또 일본으로 뛰어다니시는 본부장님의 첫 마음을 지켜내는데 인천본부가 더욱 헌신하기로 약속하며 단동결의의 밤은 깊어졌고, 잊지 못할 꼬치구이와 함께 마지막 술잔을 비웠다.

 

밝게 웃고 뛰어다니는 아이들, 그들이 정말 우리들의 희망이고 미래다. 북녘아이들과의 약속, 통일의 약속, 그 약속을 꼭 지켜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