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통일한마당 참가 (서병철, 인천운영위원)
  글쓴이 : 빵공장     날짜 : 09-12-04 15:48     조회 : 6344    

동경통일한마당 참가

서병철 인천빵사업본부 운영위원

 

내가 마지막으로 통일행사를 고민하고 준비했던 게 대체 언제였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질 않아 인천연대 계양지부 홈페이지를 뒤져야했다. 2005년 7월 23일이었다. 계양구에서 노래자랑하고 영화도 한 편 감상했었다. 너무도 오래간만에 통일행사에 참가하게 됐는데 서울도 아니고 동경이라고 한다. 내가 모범 운영위원이라서 포상하는 셈으로 보내주는 거란다. 실은 그러한 결정을 할 때, 그 의견을 제안하는 운영위원장님의 난해한 표현을 나를 포함한 운영위원 중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었다.(평소에도 이분의 표현은 반 정도밖에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그분의 난해한 제안은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성급하게 통과되었고, 나는 순식간에 포상휴가를 떠나야 하는 부담에 몰리게 된 것이다. 어쩌랴, 처음 받는 포상 휴가이니 참가하기로 결정은 했는데, 어느 행사가 참가자를 부담스럽게 하지 않는 법이 있었던가.

 

8월 8일

인천본부 임지영 사무국장이 대우에서 나온 고급 세단 M(바퀴에 껌이 붙으면 큰일 난다는)을 몰고 집으로 왔다. 전날 인천연대 중앙운영위 뒤풀이로 몸은 아직 알콜이 반이라 힘없는 국장에게 운전을 시키니 미안해 어쩔 줄을 모르면서도, 국장의 선한 얼굴로 보아 절대 욕은 안 할 거라고 믿기로 한다. 대신 동경에서 2박 3일 내내 이분의 가방을 들어 주었다.

일본 아나항공을 타고 도쿄 나리타공항까지 가는 길. 두 시간 반쯤 걸렸다. 날씨가 좋아 후지산이 훤히 보였다. 나리타국제공항은 동경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마치 인천공항이 서울에서 먼 것처럼. 누군가 나와서 기다려 줄 거라는 기대는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나를 제외한 일행 모두가 당당하게 전철을 타러 간다. 손미희 부본부장님이 몇 번 와 보셨단다. 전철 표 파는 아저씨와 한참 얘기하길래 일본어를 하시나 했더니 짧은 영어다. 하지만 우리는 숙소까지 한 번의 실수도 없이 도착했다. 도쿄의 유명한 우에노공원(봄 벚꽃이 유명하단다.) 바로 옆에 있는 조그만 호텔이다. 도착하자마자 환영회 장소로 갔다. 구민회관인데 빌려서 이런 행사를 할 수 있도록 개방하는 모양이다. 부럽고 좋은 제도라는 생각이 든다. 행사장에 도착하니 익숙한 얼굴들이 많이 보인다. 작년 재일동포초청 고국방문 행사 때 오셨던 분들이다. 서행대, 장명자, 신순자, 방청자, 설영자, 김수자 등의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잠깐의 공식행사를 마치고 숙소 근처로 와서 2차(필자는 3차)에 걸쳐 늦고 긴 뒤풀이를 했다. 당연히 잠은 턱없이 부족했다.

 

8월 9일

오후에 통일행사가 있어서 오전 시간에는 동경 시내 관광을 하기로 했다. 전철을 타고 아사쿠사로 갔다. 절로 들어가는 입구는 온통 오미야게(전통기념품가게라는 일본말-나도 일본 말 좀 하는 편이다)와 간식거리를 파는 가게들로 꽉 차 있다. 날이 무척 더워 군데군데 성업 중인 빙수 노점에 들러 빙수 한 그릇씩 먹는데, 얼음 조금 갈아 넣고 위에 종류별로 있는 시럽을 질척하게 뿌리면 완성이다. 불량식품 그 자체인데 가격은 한국의 팥빙수보다 훨씬 비싸다. 그래도 날이 더우니 위로가 된다. 점심으로 튀김을 덮은 밥 한 그릇씩 먹었다. 엄청 유명한 집이라고 하는데 가게 이름도 음식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다. 아, 음식은 뎀뿌라였나 보다. 그 다음 드디어 통일행사장으로 향했다.

행사장은 도쿄 근교의 폐교를 통째로 빌렸다고 한다. 행사장에 도착하니 벌써부터 막걸리와 음식 파티 중이었다. 곧이어 공식 행사가 시작되었다. 예쁜 전통 공연들 그리고 태권도 시범과 노래공연, 풍물공연이 이어졌다. 그런데 오락가락하던 빗줄기가 거세졌다. 우리 같았으면 벌써 철수 결정을 내려야 할 정도의 굵은 빗줄기인데 아무도 행사장을 떠나지 않았다. 결국 내리던 비는 이들을 이기지 못해 멈추고 말았다. 이어지는 김원중 홍보대사의 공연은 관중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고, 록 그룹인 박봄 밴드의 마지막 공연에서 참가자들 모두는 춤으로 하나가 되고 말았다. 행사를 무사히 마치고 숙소인 기누야 호텔 근처에서 아쉬움을 달래는 마지막 뒤풀이를 하였다. 서로에게 준비했던 선물들을 나누고 주인으로부터 제지당할 때까지 몇 가지 노래도 같이 불렀다. 아쉽지만 뜨거운 이별식이었다.

8월 10일

밤새 비가 내렸나보다. 가까스로 시간 맞춰 전철을 탔는데 비가 많이 내려서 예상보다 시간이 두 배로 걸렸다. 공항에 내리니 시간이 빠듯했다. 비행기를 무사히 탈 때까지 모두 열심히 뛰었다. 그런데 비가 많이 와서 비행기도 출발이 늦어진단다.(괜히 뛰었다.) 비행기 속에서 잠이 들며 그동안 만났던 분들의 얼굴을 한 분 한 분 떠올린다. 대부분 60세 안팎의 누님들. 엄마 같은 누님들을 이렇게 그리워해본 건 내 생전 처음이다. 10월이면 그분들을 인천에서 볼 수 있다. 가슴이 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