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각 똥개는3
  글쓴이 : 빵공장     날짜 : 19-03-20 17:19     조회 : 1358    

사진설명 [독일에서는 평양 가는 기차표를 끊을 수 있다. 다음번에 독일 올 때는 인천에서 기차표를 끊고 올 수 있을까?]

<서울역을 국제역으로>
유럽 여행이 좋았던 이유를 생각해본다. 수많은 이유 중 하나, 육로로 국경을 넘어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북쪽으로 가다 보면 휴전선으로 막혀있는, 사실상 섬나라인 한국에서 ‘국경을 넘는다.’는 것은 ‘비행기를 탄다.’와 같은 말이었다. 그러나 유럽 여행에서는 차로 배로 기차로 도보로 국경을 넘어볼 수 있었다.
유럽연합국가 내의 국경 넘기는 정말 쉽다. 국경 시스템을 최소화해 국가 간 통행 제한을 없앤 솅겐 조약(Schengen agreement) 덕분이다. 입국 심사대 앞의 긴 줄에 서서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괜히 긴장되는 마음으로 여권을 보여주고, 어쩐지 화나 보이는 입국 심사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 이동수단 안에서 넋 놓고 있으면 어느 순간 다른 나라에 와있다. ‘뭔가 풍경이 다르다.’ 눈치 챌 때 즈음엔 나라가 바뀌었다는 이정표가 벌써 저만치 멀어져 있다.
사는 곳에서 거리와 이동 시간을 놓고 보면 프랑스 파리, 스위스 취리히,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보다 같은 나라인 베를린이 더 멀다. 파리를 가도 여권이 필요 없으니 베를린이 더 외국같이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나라보다 도시별 특징을 말하는 게 더 자연스러워졌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루는 네덜란드에 가는 데 까먹고 여권을 집에 두고 공항에 갔다. (그래도 외국인 신분이라면 여권을 지니고 있는 게 안전해서 집에 다시 들렀다.)
국경을 넘을 때 어떤 기분이냐고 유럽연합국 사람인 친구들에게 물어보았다. “유럽 국가를 여행할 때 국경에 대해서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른 친구도 “언어와 문화가 달라서 다른 나라에 있다는 건 알지만, 국경을 넘는다는 것에 대해 큰 의미를 두지는 않는다.”고 한다. ‘국경이 뭐 별거라고’하는 것 같았다. 친구들은 비행기가 아닌 기차로, 버스로, 도보로, 자전거로 국경을 넘어서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부러웠다. 나에게 국경이란 아무리 힘을 주어도 깨지지 않는 단단한 사탕 같았는데, 유럽 친구들에겐 젤리처럼 말랑해 보였다. ‘국경은 언제나 딱딱하고 굳건하고 견고한 것이었는데, 어쩌면 약하고 말큰한 것일 수도 있겠다.’ 머릿속에 조여져있던 국경에 대한 나사를 살짝 풀어본다. 국경, 군사경계선, NLL 보이지 않는 선들에 말을 걸어본다.
한국에 ‘서울역을 국제역으로’ 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캠페인 하는 친구무리가 있다. 친구들은 만주로 상해로 모스크바로 몽골로 국경을 넘나들었던 독립 운동가분들을 공부했다. 그리곤 1920년대엔 서울역에서 파리행, 베를린행, 모스크바행 기차표를 살 수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여성화가 나혜석, 무용가 최승희, 마라토너 손기정 선수 모두 유럽으로 가기 위해 서울역에서 기차를 탔다며 서울역은 국제역이었다고 한다.
친구들은 서울역을 국제역으로 되돌리자고 외친다. 분단으로 끊어진 기차역을 다시 이어보자 한다. 남과 북이, 우리가, 외세가 평화체제를 위해 힘쓰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기차를 타고 유라시아 대륙을 자유롭게 넘나들자고.
목포나 부산을 시작으로 서울역을 지나, 평양을 거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를 지나 유럽을 종횡무진 여행하는 상상을 하니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만나 먹고, 놀고, 웃고, 소통하며 남한에 갇혀있는 사고에서 벗어나, 세계의 미래에 대해 논의하는 모습. 너무 멋지지 않은가.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날. 그날은 언제쯤 올까.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선을 넘는 일일까, 선을 지우는 일일까? 검색창에 북한을 치니 오늘도 시끄럽다. 북미회담, 미사일, 비핵화, 거대하고 무시무시해 보이는 이야기 말고, 그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해보고 싶다. 보이지 않는 선을 말랑하게 만드는 일에 힘을 보태보고 싶다.